희망의 인문학 캠페인

  • 특별기획
    • 인문학 가이드
    • 우리시대 인문학자
    • 책대책
    • 명사의 인문학 서재
  • 대학생 인문 독서 토론
  • 칼럼
    • 이택광의 나의 철학수업
    • 강신주의 인문학 카페
    • 정혜윤의 생각의 기쁨
    • 박권일의 소셜 맥커핀
    • 남명희의 인문학 카툰
    • 고경태의 아버지의 스크랩
  • 인문학뉴스
    • 인문신간
    • 인터뷰
  • 추천인문서
    • 인문교양
    • 철학
    • 역사
    • 심리
    • 사회
  • 희망이벤트
  • 공지사항

특별기획 - 책대책

[공개대담모집] 잃어버린 차원을 찾아서
  • 글| 김연중, 김창규
  • 게재일 | 2012.06.04 조회수| 1416
잃어버린 차원을 찾아서
▣『숨겨진 우주』 대 『플랫랜드』
120여 년 전, 영국의 언어학자이자 교육자였던 에드윈 애보트는 3차원보다 훨씬 높은 세계를 상상했다. 1884년 쓴 책『플랫랜드』에서 그는 다양한 차원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처음에는 스퀘어(square)라는 필명을 써서 발표해야만 했을 정도로 단순히 기하학적 상상뿐만 아니라 빅토리아 시대 영국 상황에 대한 절묘한 풍자까지 담았던『플랫랜드』와, 표준모형을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되는 5차원 ADD 모형을 과학교양서로는 최초로 다룬 『숨겨진 우주』를 통해 차원이란 개념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얼마나 다르게 바라볼 수 있게 하는지 알아본다.
▣ 기획 : APCTP(아태이론물리센터 / 웹진 「크로스로드」), 사이언스북스
* 책 대 책이란?
한 권의 책을 내용 중심으로 소개하던 일반적인 서평 쓰기에서 벗어나 물리학의 역사에서 이정표 역할을 했거나 물리학을 대중화시키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한 책들을 중심으로 인물 대 인물, 이론 대 이론, 이론 대 현실(혹은 상상), 명강의 대 명강의 등 두 권의 책을 비교분석하는, '희망의 인문학 캠페인'의 새 코너다.

숨겨진 우주

리사 랜들 저/김연중,이민재 공역 | 사이언스북스

리사 랜들의 『숨겨진 우주(Warped Passages)』는 세계 이론 물리학계의 최대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여분 차원(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4차원보다 높은 고차원 세계)’의 물리학을 소개하는 책이다. 리사 랜들은 자신과 공동 연구자들이 구축한 여분 차원의 물리학이라는 이론적 모형이 어떤 역사적·학문적 맥락 속에서 탄생했으며, 그것이 가지고 있는 이론적·실험적·세계관적 가능성을 조망하며, 독자들을 새로운 차원의 세계로 안내하고 있다.



새로운 차원의 세상을 찾아서

다른 크기의 세상, 다른 차원의 세상은 언제나 신비롭다. 누구나 그랬듯 어린 시절 나는 호기심이 많았다. 나는 작은 렌즈를 들고 하루 종일 무언가 새로운 것을 찾아 헤매곤 했다. 그저 검은 점이었던 개미는 울퉁불퉁한 갑옷을 온몸에 두른 장군의 모습이었고, 별 다를 바 없이 밝은 점이었던 토성은 사진에서처럼 아름다운 고리를 갖고 있었다. 나는 확대경으로도 보이지 않는 작은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또 너무 커서 눈에 들어오지 않는 커다란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했다. 그래서 가끔 이런 상상을 하곤 했다.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키가 커지는 물약이 있다면, 또 키가 작아지는 빵 조각이 있다면 하고 말이다.

그런데, 이런 바람은 어린 아이들만의 전유물이 아닌가 보다.

과학이 형이상학의 영역에서 실재의 영역으로 넘어오면서 과학자들은 측정을 통한 검증과 예측이라는 기준을 과학이라는 체계 내에 도입했다. 이에 따라 측정 기준이 적용 가능한 한계 영역이라는 울타리를 쳐야 했다. 알 수 있는 것에 대해서만 이야기해야 하는 이런 엄격함 속에 물리학자들은 유효 이론이라는 현실적인 타협안이 있었다. 그러나 호기심과 지적인 모험심에 있어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물리학자들은 현재의 한계 너머에 대해 궁금해 했다. 물리학자들은 현재의 이론을 완벽하게 만들어줄 잃어버린 퍼즐 조각이 지금은 갈 수 없는 저 너머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 끊임없이 상상해왔다. (연구해 왔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올바른 표현일 것이다.)

지루해 보일 것만 같은 물리학자들의 상상력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어린 내가 생각한 새로운 세상이 현재의 모습이 그대로 복제된 또 다른 현재에 불과하다면, 물리학자들이 생각한 새로운 세상은 3차원이라는 공간 차원에 6 개의 공간 차원이 추가된 10차원 공간이라든가, 두 개의 차원이 곱해지면 우리가 아는 차원과 동등해지는 초공간 차원(Super Space)이라든가, 서로 다른 입자들을 연결해주는 내적인 공간처럼 우리에게 익숙한 공간과는 사뭇 다른 세상이다.

“숨겨진 우주”의 저자인 랜달과 그녀의 공동 연구자 선드럼 또한 5차원 중력자라는 토끼를 따라 새로운 차원/공간의 특성에 종속된 계층성 문제[주1](hierarchy problem)라는 둘상한 나라[주2]로 뛰어들었다. 여분 차원(Extra Dimension)의 도도 새는 영영 제자리만 맴돌아야 하는 것일까? 4차원 막(brane)을 벗어나 5차원 세계를 여행하면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일반적으로 차원은 어떤 대상의 성질을 독립적으로 기술할 수 있는 숫자들의 개수를 의미한다. 공간 영역에서 차원은 점으로 구성된 0차원, 직선으로 이뤄진 1차원, 평면으로 구성된 2차원, 그리고 2차원에 높이가 추가된 3차원의 예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또, 차원은 어떤 사람의 개성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할 수도 있다. 나이를 나타내는 축(1차원), 키를 나타내는 축(1차원), 일 년 동안 읽는 책의 수(1차원), 등등. 이때의 차원들은 임의로 선택할 수 있거나(개인을 묘사하는 차원), 벽을 기어가는 개미처럼 외부 환경에 의해 특정한 숫자로 정해진다. (공간을 기술하는 차원)

하지만, 모든 것에 대한 이론인 초끈 이론(Supersting Theory)에서 차원은 오직 10차원만 가능하다. 그 외의 차원에서는 초끈 이론은 존재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초끈 이론에는 우리가 살고 있는 4차원을 제외한 6개의 여분 차원이 생기고 이를 적절한 방법으로 소거해야 한다.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소거법은 6개의 차원의 크기가 무척 작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길이가 무한한 원통을 아주 멀리서 보면 1차원의 선처럼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그뿐 아니라, 여분 차원을 작게 만들 때 그 결과가 우리가 보는 세상이 되도록 조심해야 한다. 즉, 남아있는 4차원 공간은 왼손잡이 입자(Left handed)와 오른손잡이 입자(right handed)를 구분하고 반전 대칭성(Parity Symmetry)을 깨는 약력을 포함하는 표준 모형(Standard Model) 입자와 힘을 재현할 수 있어야 한다. 초끈 이론가들은 여분 차원이 칼라비 야우 다양체(Calabi Yau Manifold)라는 모양을 하고 있으면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 것을 발견했다. 문제는 이런 칼라비 야우 다양체가 수 없이 많다는 것이다.

여분 차원을 일상의 차원에서 소거하는 또 다른 방법은 우리가 여분 차원을 느끼지 못한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마치 플랫 랜드에 사는 스퀘어 씨가 3차원 개념인 높이를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는 4차원의 막에 살고 있고 그 이상의 차원은 느끼지 못한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이것은 10차원을 소거하기 위한 전통적인 이론가의 접근 방식과 다소 차이가 있다. 끈 이론 모형에서 영감을 얻었지만 이 방법은 계층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4차원 막에 여분 차원을 도입한 모델 구축가(model builder)들이 적극적으로 적용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4차원 입자들이 여분 차원을 느끼지 못한다고 해서 여분 차원이 4차원에 영향을 전혀 미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중력을 에너지 혹은 질량에서 공간 전체로 중력자(graviton)-중력을 매개하는 입자가 고르게 퍼져나가는 현상이라고 생각한다면 중력 법칙은 공간의 개수에 따라 다른 형태를 띠게 된다. 랜달이 보기로 든 것처럼 가느다란 관 내부로 물이 뿜어져 나오는 예를 보면, 수도관을 1차원으로 보면 물은 관의 길이 방향으로만 흐르지만 2차원으로 관을 보게 되면 물은 수도관에 수직한 방향으로도 흐른다. 중력도 마찬가지로 가까이 들여다 보면 차원의 개수와 형태에 따라 다른 모양을 띠게 된다.

한편, 막 세계는 전체 차원 중에서 일부 차원(막)에 입자들이 구속되어 있어서 막 위에서만 입자들이 움직이는 세계를 말한다. 샤워 커튼 위를 흘러내리는 물방울이나 얇은 사과 껍질 위를 움직이고 있는 개미가 일상 생활에서 보게 되는 막 세계다. 그런데 막은 실제로 무엇이고, 우리(표준 모형 입자)들이 이 막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막은 끈 이론에서 실과 같은 모양의 열린 끈(Open String)의 끝점이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을 말한다. 하지만 끈 이론에서 이 막(D 막- D brane)들은 폴친스키(Joseph Polchinki)가 밝힌 것처럼 일정한 크기의 장력(Tension)은 물론이고 전하(charge)를 가질 수 있으며 상호 작용(interaction)도 가능한 막과 같은 존재다. 즉 막은 단순히 공간의 의미를 넘어 끈 이론의 빈 곳을 채워주는 물리적인 실체인 셈이다.

마지막으로 표준 모형 입자들을 만들 수 있는 열린 끈들은 막 위에서만 움직일 수 있다는 정의를 추가하면 4차원 입자들은 막 위에 속박되는 것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4차원 막 위에 살고 있는 입자들은 여분 차원을 느끼지 못할까? 여분 차원은 어떻게 계층성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랜달과 선드럼은 4차원 막과 하나의 여분 차원을 가정한다. 4차원 막은 두 개일 수도(RS1) 한 개(RS2)일 수도 있다. 4차원 막은 에너지를 갖고 있어 시공간을 휘게(warp) 할 수 있으며 약전자기 대칭성 깨짐(Electroweak Symmetry breaking)과 관련된 힉스 입자(Higgs boson)와 표준 모형 입자들이 속박되어 있다. 공간 전체(벌크,bulk)를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것은 중력자뿐이다.

이를 토대로 랜달과 선드럼은 1016배라는중력자와약력게이지보손(weakgaugeboson)의질량차이를4차원막이만드는비틀린시공간(warpedspace)을통해자연스럽게설명한다.

서로 다른 부호를 갖는 두 개의 막이 5 번째 차원의 경계를 형성하는 RS1 모형에서, 다섯 번째 차원에 수직한 방향으로 공간을 얇게 잘랐을 때의 단면은 우리가 보는 3+1 차원의 공간처럼 완전히 평평하게 보인다. 반면, 다섯 번째 공간은 급격하게 뒤틀려(warped) 있다. 마치 평평한 원 조각들을 이어 붙여 속이 채워진 깔때기를 만든 것처럼 말이다.

비틀린 시공간의 곡률(curvature)은 중력자의 확률 함수(probability function)로도 설명이 가능하다. 중력자의 확률 함수는 특정 위치에서 중력이 발견된 확률에 대한 함수로 중력의 세기 즉 시공간의 곡률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역으로 시공간의 곡률은 중력자의 확률 함수로 해석이 가능하다. 앞서의 예를 보면 다섯 번째 차원에 수직한 방향으로는 공간이 평평하므로 중력의 확률 함수는 같은 값을 갖는다. 반면 다섯 번째 차원 방향의 확률 함수는 중력 막에서 시작해 지수 함수(exponential function) 형태로 감소한다. 그 결과 표준 모형이 살고 있는 약력 막(TeV Brane, weak energy brane)에서 중력(Planc Brane, gravity energy brane)은 무시할 수 있을 만큼의 확률 함수 값을 갖고, 따라서 표준 모형 입자들과 중력자의 상호 작용 즉 중력 값은 굉장히 작은 값을 갖는다.

다시 말해 비틀린 기하(warped geometry)에서 중력자의 확률 함수가 지수 함수 형태로 변하기 때문에 1016배에달하는중력과약력의차이는(계층성문제)단순히16이라는공간차원값으로치환가능하다.

한편 표준 모형 막과 무한히 뻗어있는 5차원 공간을 가정하는 RS2 모형 역시 비틀린 시공간을 갖는다. RS1에서처럼 중력자의 확률 함수는 중력막 근처에서 값을 갖고 그 너머에서는 지수 함수 형태로 급격히 감소한다. 중력자의 확률 함수가 워낙 빠르게 감소하기 때문에 중력막 너머에는 중력자가 거의 분포하지 않게 된다. 다시 말해 중력장이 중력 막 근처에 국소화돼 있기 때문에 중력 막 밖의 중력은 막 위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아 4차원 중력과 차이를 느낄 수 없다.

실험적으로 보면 RS1의 경우 1 TeV까지 에너지를 만들 수 있는 LHC에서 KK 입자[주3] 와 5차원 중력자의 관측이 가능하다. 반면 RS2 모형에서 질량이 없는 KK 입자는 중력막 밖에 국소화 돼 있어 막에 속박된 입자와 상호작용하지 않는데다 중력 역시 4차원 중력 이론과 크게 다르지 않아 실험적으로 관측이 용이하지 않다.

RS2 모델의 경우 직접적으로 계층성 문제를 다루고 있지는 않지만 RS1처럼 두 번째 막을 도입하면 계층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그보다 RS2의 의의는 여분 차원이 무척 크기가 작아야 한다는 기존의 가정을 부인한 데에 있다.

마지막으로 랜달은 국소적으로 국소화된 중력 이론(locally localized gravity)을 통해 우주의 개념을 확장한다. 이 모형에는 5차원의 비틀린 공간에 막이 하나 있지만 막은 굉장히 작은 음수 값의 진공 에너지(vacuum energy)를 갖고 있어서 완벽하게 평평(flat)하지는 않다. 그 결과 이 모형에서 중력은 중력 막 위와 그 근처에서는 4차원 중력의 모습이지만, 중력 막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는 5차원 중력의 형태를 띤다. 랜달은 이 모형을 통해 우리 우주가 검증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만 4차원이라고 말할 뿐 우주 전체가 4차원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이제 길었던 차원 여행을 끝마칠 시간이다. 꿈에서 깨면 이상한 나라를 떠나는 앨리스와 달리 여전히 우리는 둘상한 나라에 살고 있다. 그러나 이곳이 5 차원인지 10 차원인지 그저 4차원인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무한과 유한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여분 차원의 도도 새는 LHC 입자 가속기에 의해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

코페르니쿠스가 우주의 중심을 지구에서 태양으로 옮겨 놓았던 것처럼, 현대 물리학의 선구자들이 상대성 이론과 양자 역학의 신대륙을 발견한 것처럼, 오늘의 물리학은 우리가 살고 있는 4차원의 우주가 우주의 전부가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공간 역시 단순히 입자들이 움직이는 배경이 아니라고 말한다. 물리학자들은 여분의 차원이 존재하며 차원과 공간은 우주의 근본 원리가 담긴 논리적인 산출물이자 우주의 비밀을 풀기 위한 열쇠가 숨겨져 있는 탐구의 대상이라고 말한다.

이 모두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무한한 여분의 차원 혹은 1mm 혹은 그 보다 작은 크기의 우주 속에 숨겨져 있다. 숨겨진 우주는 평평할 수도 혹은 급격하게 휘어져 있을 수도 있다. 또 우주 전체의 모습 역시 하나가 아닐 수도 있다. 어쩌면 우리 우주는 수많은 우주 중 하나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 어느 것도 확실한 것은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진리의 동굴을 향해 용감하게 뛰어 드는 것. 새로운 실험을 통해 이론의 한계를 똑바로 바라 보는 것뿐이다.

이제 최근 가동을 시작한 LHC와 우주 망원경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자. 힉스 보손과 초대칭성(supersymmetry), 대통일 이론(GUT, Grand Unified Theory), 그리고 여분의 차원. 물리학자들은 그 동안 숨겨져 있던 세계를 보게 될 것이다. 어쩌면 이 세계는 우리 예측과 딱 맞아 떨어지는 모습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또 어쩌면 우리가 믿어왔던 진리가 산산이 흩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지금 인류의 지식이 새로운 차원을 맞이 하고 있으며, 새로운 진리를 대하는 우리에게는 두려움이 없다는 것이다.

김연중(광학 관련 연구원 / 번역자)

에필로그
차원이라는 주제에 맞춰 책을 소개하다보니많은이책의많은부분을소개하지못했다. 사실 랜달의 “숨겨진 우주”는 상대성 이론, 양자 역학에서부터 초끈 이론에 이르기까지 현대 물리학의 거의 모든 개념을 일상 생활의 비유로 쉽게 설명한 훌륭한 책이다. 다만, 너무 방대한 내용을 설명하다 보니 주제가 흐려지는 점이 있기도 했다. 바꿔 말하면 이 말은 그 많은 내용들을 알아야만 저자의 의도를 알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는 현대 물리학의 숙명이기도 하다. 어쨌거나 이 책 한 권이면 현대 물리학의 거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셈이니 충분히 읽어 볼 가치가 있는 책이다.

[주1] 계층성 문제는 중력은 왜 다른 힘들과 그토록 힘의 세기가 다른가에 대한 물음이다. 왜 두 개의 전자 사이의 중력(인력)은 두 전자 사이의 전기력(척력)보다 1조 배의 1조 배의 1억 배(1044배)나 작은가에 대한 물음이다. 물리학 용어로 바꿔 쓰면 계층성 문제는 약전자기 대칭성이 붕괴되는 약력스케일(약 250GeV)과 중력을 주는 플랑크스케일(1019GeV) 사이의 엄청난 에너지 차이의 근원에 대한 문제다. 계층성 문제는 우주상수 문제와 더불어 우주의 비밀을 쥐고 있는 현대물리학의 가장 중요한 열쇠 중 하나다.
[주2] 둘상한 나라(TwoLand)는 랜달이 1차원 세계를 의미하는 일상한 나라(oneLand)와 대비해 만들어낸 2차원 세계를 말한다. 이 글에서는 여분의 차원이 존재하는 세계를 묘사하기 위해 둘상한 나라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주3]고차원에 존재하는 입자가 고차원 운동량을 가질 경우 4차원에서 이 입자는 고차원 운동량이 없는 입자와 전하량 등 입자의 성질은 동일하지만 질량이 다른 입자처럼 보이게 된다. 이런 입자를 KK 입자라고 한다.

서평자 / 김연중(광학 관련 연구원 / 번역자)


플랫랜드

에드윈 A. 애보트 저/윤태일 역 | 늘봄

차원의 입체공간에서 사각형으로 보이는 도형이 2차원의 평면공간에서는 어떻게 보일까? 직선으로 보일 것이다. 그렇다면 만약에 모든 게 평면인 2차원의 나라가 있다면, 그 나라는 도대체 어떤 세계일까? 바로 이러한 소박한 공상으로부터 이 이야기는 시작한다. 이 소설은 미치광이 정사각형이 자신이 경험한 여러 차원의 세계에 대해 회상하는 형식으로서, 『걸리버 여행기』의 계보를 잇는 환상 여행기의 고전이다. 『걸리버 여행기』가 주로 어린이용 동화로 읽히고 있는 데 반해, 이 소설은 하버드대 예일대 등 미국 명문 아이비리그 대학에서 신입생 이들이 꼭 읽어야 할 필독의 교양서로 자리매김되어 있다.



시간이라는 물리량으로 퇴색시킬 수 없는 과학 소설

어떤 소설을 짧은 시간에 남에게 소개하기 위해서는 짧고 간결한 수식어를 붙여야하는 경우가 많다. 해당 장르를 종으로, 또는 횡으로 구분하고 그 중 한 곳에 작품을 끼워 넣은 다음 최상을 암시하는 단어를 덧붙이면 그런 수식어를 쉽사리 얻을 수 있다. ‘최고의 풍자소설’, ‘시대를 대표하는 추리소설’등이 그 예이다. 이제 이 공식에 맞춰서 『플랫랜드』를 꾸며본다면? 답은 이론의 여지가 없이 ‘고전 명작 과학소설'이다.

고전이라는 말은 조심스럽게 다뤄야 하는 양날의 칼이다. 오래 되었음에도 여전히 소개된다는 면에서 보면 칭찬이지만, 그 속에는 작품이 발표되었던 시기의 시대적 배경이나 의식 개화의 정도를 감안해달라는 변호도 들어있는 게 보통이기 때문이다.

『플랫랜드』는 19세기의 교육자, 에드윈 A. 애보트가 1884년에 쓴 과학소설이다. 이렇게 발표 시기까지 밝히고 나면 앞서 얘기한 ‘고전’의 변호를 끄집어내려는 모양이라고 짐작하기 쉽지만 놀랍게도 『플랫랜드』는 그런 변호가 필요 없다. 일독하는 내내 발표 시기를 감안하겠다는 독자의 오만을 거의 허용하지 않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지금 이 서평을 쓰고 읽는 우리가 공간적으로 익숙한 세계는 3차원이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직교하는 세 개의 축이 구현하는 입체적 공간 속에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 작품 속 표현을 빌자면, 우리는 길이, 너비, 높이를 측정할 수 있다. 반면에 『플랫랜드』는 2차원 평면세계의 이야기이다. 화자를 포함한 플랫랜드 사람들은 두 개의 축이 이뤄내는 공간에 묶여서 산다는 얘기다.

플랫랜드는 높이가 없는 세계다. 그렇다면 거주자들은 어떻게 생겼을까. 그들은 평면을 벗어날 수 없는 다각형이다. 다각형은 인접한 두 변이 이루는 각도, 꼭짓점과 변의 개수 등 기하학적인 성질에 따라 정의된다는 점을 떠올려보자. 이 사실은 플랫랜드 사람들에게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작가인 에드윈 A. 애보트는 이 착상을 우직하고 꼼꼼하게 밀고 나아가서 다각형을 의인화한다. 예를 들어보자. 다각형이란 위에서 내려다봐야 그 모양새를 한 눈에 알 수 있다. 하지만 플랫랜드에는 위(와 아래)가 없다. 타인을 관찰하는 방법은 옆에서, 평면과 같은 눈높이에서 보는 것뿐이다. 실제로 감각기 또한 평면상에만 존재하니까. 각진 부분으로 상대에게 상처를 입힐 수도 있기 때문에 직접 만지는 것은 매우 무례한 행동이며 저급한 인식법이다. 따라서 플랫랜드 사람들에게는 미세한 원근으로 상대가 몇 각형인지 알아내는 고급 인식법이 있다. 기본적인 생활상조차도 기하학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것이다 (사족을 달자면 우리 삶도 그렇다.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라 새삼 깨닫기는 어렵지만). 허구 속 세계가 어느 수준 이상으로 정묘하고 아름다우면 허구에 대한 거부감이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마련인데, 플랫랜드는 수학적 구조를 세계 구성에 적극적으로 도입해서 그 목적을 깔끔하게 달성하고 있다.

플랫랜드는 철저한 계급사회이고, 계급의 높낮이는 다름이 아니라 거주자들의 기하학적인 차이에 기인한다. 많은 선분으로 이뤄진 사람일수록 계급이 높고 존경을 받으며, 정다각형에 가까울수록 해당 계급에서 자질을 인정받는다. 순수한 정다각형에서 벗어난 이들은 생명을 위협하는 수술을 통해 몸의 구조를 교정하며 지위를 높이기도 한다. 플랫랜드가 우화임이 가장 도드라지게 드러나는 부분이다. 우화에 계급이 더해졌으니 이는 거의 필연적으로 풍자가 된다. 플랫랜드도 다르지 않다. 그럼 풍자로서의 질은 어떨까. 풍자를 두고 질을 논하는 것 자체가 질이 떨어지는 행위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그래도 무릅쓰고 얘기해본다면 상당히 고급이라고 평하고 싶다. 이 작품의 풍자는 상위계급의 졸렬함이나 추함을 강조하는 데에만 그치지 않는다. 독자가 사는 세상의 모습과 일대일로 대응시키는 쉬운 방법을 택하지도 않는다. 플랫랜드의 거주자들은 변이 많은 다각형일수록, 다시 말해서 원(員)에 가까울수록 높은 계급에 속한다. 최상위 계급인 수백각형들은 성직자이다. 그럼 성직자는 체제 유지의 수단으로 무엇을 통제하는가. 바로 인식법이다.

플랫랜드의 구조적 특성 때문에 타인의 계급을 인식하는 일이 번거롭다는 점은 앞서 얘기한 바 있다. 그 힘든 구분법을 사용한다는 것 자체가 계급을 가르는 또 하나의 지표가 된다. 그런데 어느날 이 모든 번거로움을 단번에 타파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다각형의 변을 다양한 색으로 칠하는 ‘채색’이 그 길이다. 이렇게 하면 고급 인식법을 배우지 않아도 순간적으로 상대가 몇 각형인지 알 수 있다. 신분이 낮은 이등변삼각형들은 채색을 널리 퍼뜨리고 더 나아가 이 기회에 계급의 상하까지 없애려고 한다. 태생적인 차이가 계급을 구분지어 왔는데 우습게도 그 차이를 더욱 쉽게 알 수 있는 방법이 체제를 변혁하는 활로가 된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이 색혁명은 실패로 끝난다. 최고성직자는 채색의 양면성을 부각시킨다. 색으로 계급을 속일 수 있으며, 그로 인해 모든 이들이 자신의 계급에서 누리던 이점을 잃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 것이다. 얄밉게도 이 지적에는 일말의 사실이 들어있다. 자유와 평등이 눈앞에 다가와 있다는 희망으로 흥분했던 이들은 눈앞의 손해에 눈이 멀어 공격의 방향을 반대로 돌린다. 『플랫랜드』에는 이처럼 다양한 지점에 유연하게 대응시킬 수 있는 열린 풍자가 들어있다.

멋들어진 세계 조성을 얘기했으니 이제 과학소설로서의 또 다른 측면을 살펴보자. 잘 만든 과학소설의 제1요소는 경이감Sense of Wonder이다. 경이감은 의식의 확장과 한계돌파에서 오는 고양감이다. 하지만 새로운 것을 보여주고 상상이 한 발 더 내딛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준다고 해서 반드시 경이감이 따라오는 것은 아니다. 치밀한 장치를 통해 과학소설 속 세계를 억압해주면 그 장치에 들어간 기교를 통해 경이감을 얻는 경우도 있다. 갑갑하고 모순된 플랫랜드의 모습은 바로 그런 식으로 경이감의 맛보기를 시연한다. 작가가 그 다음 순서에 배치한 것은 수학자인 화자의 모험이다. 우리의 화자는 꿈을 통해서 더 낮은 차원의 세계를 경험한다. 평면세계인 플랫랜드보다 한 층위 낮은 곳은 직선의 세계 ‘라인랜드’다. 플랫랜드에는 옆이 있었지만 라인랜드에는 그조차 없다. 있는 것은 앞과 뒤뿐이다. 화자는 차원의 층위를 정확히 예측할 수 있는 유추를 통해서 라인랜드의 왕에게 플랫랜드를 알리려 한다. 왕은 라인랜드를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지만 감각의 너머에 있는 플랫랜드는 이해하지 못한다. 절망하고 라인랜드의 왕과 헤어진 화자에게 3차원 세계인 스페이스랜드의 주민, 구(球)가 접촉을 해온다. 주인공은 라인랜드의 왕과 똑같이 구의 설명을 이해하지 못한다. 구는 유추를 시도하고 실패하자 결국은 화자를 입체의 세계로 들어 올려준다. 세계의 한계가 ‘나’의 한계라고 할 때, 세계 인식이 죽으면 나 또한 죽는다. 그리고 새로운 ‘나’가 탄생한다. 주인공은 플랫랜드와 직결되어 있던 인식이 죽는 것을 경험하고 입체에 눈을 뜬다. 화자의 억압에 감정이입을 하던 독자는 이제 화자가 느끼는 경이감까지 공유하게 된다. 구의 전능함에 놀라 신까지 언급하던 화자는 이내 그 전능함이 우주의 보편적 양상임을 알고 더 높은 차원을 갈망한다. 유추는 이제 설명이 아니라 경이로움으로 가는 계단이 되고, 화자는 7차원을 꿈꾼다. 꿈이란 두 가지 의미가 있고, 꿈을 이루었음에도 깨어나야 하는 불쾌한 경우도 있게 마련이다. 대오각성한 화자가 바로 그런 상황에 처한다. 화자는 플랫랜드로 돌아온다. 이제 남은 것은 동족에게 우주의 진짜 모습을 알리는 일이지만 플랫랜드의 최고위원은 상위 차원이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깨닫고 있다. 이 경우 체제를 유지하려는 최고권위자의 선택은 무엇일까. 우리는 적지 않은 역사적 사실을 통해 답을 안다. 외면, 무시, 부정, 은폐, 소거. 폭력이 공공연히 자행되는 플랫랜드에서 주인공에게 남은 운명은 하나뿐이다.

서평자 / 김창규(과학 소설 작가 / 번역자)

이미 두 가지 방법으로 독자에게 경이감을 선사한 과학소설을 두고 더 많은 것을 내놓으라고 하면 지나친 욕심이다. 하지만 이쯤에서 억지로 흠을 내기 위해 자취를 돌아보면 이 작품이 너무 직선적인 구성을 선택했다는 점이 못내 아쉽다. 주인공이 불만족스러운 현실을 인지하고 새로운 눈을 떠 경이감이나 깨달음을 얻는다는 진행은 구도소설이나 성장소설의 전형이어서 과학소설의 장점인 경이감의 극대화를 다소 축소시킨다. 결말이 행복하고 불행하고를 떠나서 화자가 맞이한 운명은 고양감에 부풀었던 독자에게 얼음물을 끼얹는 부작용이 있다.

또 한 가지. 우리는 현실세계에서 최상계층이 어떻게 몰락하는지를 잘 알고 있다. 휠체어, 죽음, 망명이라는 단어들이 꽤 익숙하지 않은가? 존재의 한계 자체가 다른 세계를 아름다울 정도로 잘 만들어 놓았다면 그 탄력을 더 밀고 나아가서 지배구조의 와해와 변혁까지 그에 걸맞게 그릴 수 있을 것이다. 스페이스 랜드의 주민이 도와주지 않는다면 플랫랜드의 주민들은 어떻게 세계의 참모습에 도달할 수 있을까. 유추를 통해서 구가 아는 세계보다 더한 곳까지 그려보았던 수학자는 어떤 기발한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정보의 통제가 사라진다는 것만으로 기적이 일어날 리는 없으니 해방 이후의 모습까지 독특하게 보여주었다면 그야말로 과학소설에 어울리는 결말이었을 것이다.

서두에서 『플랫랜드』는 고전이라는 이름의 변명이 필요 없는 작품이라고 했지만 약간 다른 변호는 필요하다. 이 작품은 고전명작인 동시에 원형이다. 과학소설의 기본 요소를 정직하게 따른다는 면에서 그렇고, 플랫랜드 세계의 구조를 독자에게 설명하는 점층적인 방법이 어딘지 익숙하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일반 독자를 대상으로 차원 구분의 기초 개념을 설명하는 과학서들이 정확히 똑같은 방법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독자는 그 선후를 명확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원형격 작품이 어떤 영향을 미쳤고 얼마나 가지를 쳤는지, 과학소설계의 어떤 거장이 무슨 격찬을 했는지는 책 안에 구구절절 나와 있으니 독자가 작품을 감상 한 후에 그 부분을 확인하며 공감하는 기쁨을 미리 망치지는 않겠다. 대신 완벽한 감상을 위해 도움말씀을 드리자면 소설 본문보다 앞서 나오는 ‘개정판에 대한 편집자의 서문’은 본문 감상 후에 읽기를 권한다. 서문에서는 이공계 지식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품을 법한 의문, 즉 관념적인 기하와 실체의 차이까지도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이감이 듬뿍 들어있는 음식을 맛본 후 작가가 얼마나 치밀했는지를 확인하기에 그보다 더 어울리는 후식은 없을 것이다.

서평자 / 김창규(과학 소설 작가 / 번역자)

[책대책 공개대담 초대]

일시 : 6월 19일 19시
장소 : 강남출판문화센터 5층 민음사 대회의실
신청 방법 : 기사 아래 댓글로 신청
목록

독자한마디 기사를 읽은 소감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