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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 명사의 인문학 서재

예술가는 철학자다, 설치미술가 서도호
  • 글| 중앙일보 하현옥 기자
  • 게재일 | 2012.06.07 조회수| 3715

서울과 런던, 뉴욕을 오가며 유목민적 삶을 살고 있는 서도호는 “내게 집은 옷, 나는 달팽이처럼 집을 업고 입고 다녔다”고 말했다. 천으로 집을 만든 것도 달팽이처럼 집을 옮기려는 시도였다. 올봄, 집을 통해 나를 찾아가는 여정으로 10만 관객을 이끈 그가 가을, 고종 황제의 침전인 덕수궁 함녕전을 되살려낸다. 비운의 대한제국 역사를 머금은 함녕전 앞에 선 서도호. 함녕전을 등에 진 달팽이를 연상시킨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곤충채집 숙제로 파리나 잡아가던 서울내기였다. 초등학생 서도호는 학교가 파하면 을지로 집 근처 신세계 백화점 지하 활어센터로 물고기 구경을 갔다. 서울에 수족관도 없던 시절, 그의 물고기 사랑은 『원색자연생물도감』에서 비롯됐다. 설치미술가 서도호(50)가 꼽은 유년기의 책이다. 사촌에게서 물려받은 이 책을 유치원도 들어가기 전부터 넘겨 봤다. 그림과 함께 보며 글을 깨쳤다.

 형형색색의 물고기에 사로잡힌 어린 시절, 그의 영웅은 해양생물학자 정문기(1898∼1995) 경희대 명예교수였다. 그의 신문칼럼 애독자였던 이 당돌한 학생은 신문사로 전화해 저서를 구할 길을 물었다. 『신 어류박물지』 등 정 교수의 책을 모조리 구해 읽었다.

 좌절은 고교 때. 수학 성적이 좋지 않아 해양생물학자 꿈을 접었다. “잃어버린 3년이었어요. 하고 싶던 것을 못하는 상황이었으니.” 서울대 동양화과로 진학했다. “지금 생각해도 미스터리에요. 왜 그렇게 좋아하던 걸 내려놓고 미술을 택했는지. 지나고 보니 물고기에 대한 관심은 곧 형태에 대한 관심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서도호가 책에 대한 기억을 풀었다. 지난달 하순 덕수궁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올 9월 덕수궁 함녕전(咸寧殿)을 주제로 한 작품을 선보인다. 함녕전은 고종(1852∼1919)의 침전(寢殿). 왕의 가장 내밀한 공간이던 이 전각을 오늘에 되살리는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다.

 -책이 매개가 됐다고 들었다.

 “1년 반 전 영국에 가 살게 되면서 20세기 초 서울을 방문했던 외국인이 남긴 기록을 많이 읽게 됐다. 『독일인 겐테가 본 신선한 나라 조선, 1901』 『영국 화가 엘리자베스 키스의 코리아 1920∼1940』 등이다. 대한제국을 둘러싼 국제관계를 알게 됐고, 고종에 대한 인간적 연민도 느끼게 됐다.”

 -요즘 많이 읽는 책은.

 “동화다. 돌쟁이 딸에게 읽어주면서 그 철학적 깊이에 깜짝깜짝 놀라고 있다.”

 올 봄 미술계에선 서도호가 키워드였다. 삼성미술관 리움선 개관 이래 첫 생존 한국 미술가의 개인전으로 그의 ‘집 속의 집’전을 열었고, 이 전시엔 10만1200여 명이 몰렸다. ‘현대 미술은 어렵다’는 편견을 깼다. 예전 이 미술관 최고 인기전시였던 ‘앤디 워홀 팩토리’전(10만900명, 2007년 3∼6월)을 넘어섰다. 그는 “소통을 전제로 한 투명한 작품들, 소통을 배려한 공간 활용, 그리고 소통을 갈망한 관객들의 공감대 덕분이다”고 했다.

 -작품에 영감을 준 책이라면.

 “답하기 어렵다. 건방진 얘기일지 모르겠지만 ‘나는 나는 이런 책을 읽었고, 이런 생각을 가지고, 영감을 받아서 작품 했다’고 말하는 건 작가의 자존심이 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그런 책들을 읽었더라도 작품은 결국 자기 목소리로 만들어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관념이 있다. 그래서 읽는 것보다 그걸 소화하는 과정이 더 길고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가 꼽은 미술 관련 책은 대학 수업을 들었던 간송미술관 한국민족미술연구소 최완수 연구실장의 『한국 불상의 원류를 찾아서』, 개념미술가 박이소(1957∼2004)의 번역으로 더 알려진 『이것은 미술이 아니다』(메리 앤 스타니스제프스키) 등이다.

 서도호에게 책은 애물단지인지도 모른다. ‘노마드(유목민)’라 불릴 만큼 세계 이곳저곳으로 옮겨 다닌 그에게 가장 무겁고, 버릴 수도 없는 짐이 책이었을 터다.

 -당신에게 책이란.

 “책은 다른 사람이 쓴 걸 내가 읽는 것이다. 책을 읽어야겠다 절실히 느꼈을 때는 굉장히 힘들 때였다. 방향을 못 잡고 헤맬 때, 책은 그 어려운 시간을 지나갈 수 있도록 해 준 심리상담자였다.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생각과 공감하는 그 순간, 거꾸로 저자에게 내 얘기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는 픽션은 즐기지 않는다. 미국의 심리학자가 경험한 전생 얘기인 『나는 환생을 믿지 않았다(Many Lives, Many Masters)』는 불교의 세계관과 통하는 데가 있어서 흥미로웠다. 그를 가장 세게 뒤흔든 책 중 하나는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1930∼2004)의 『Memoirs of the Blind(장님의 기억들)』. 데리다가 루브르박물관의 소장품전 기획에 초빙됐을 때 썼던 책으로, 미술과 보는 것에 대한 성찰을 담았다. 서도호는 “책을 통해 저자들의 생각에 경외감을 갖고, 그 같은 준엄함(rigor)이 내 작품에도 들어갔으면 한다”고 말을 맺었다.

서도호(50)=1962년 서울 출생. 서울대 동양화과 및 대학원 졸업, 미국 로드아일랜드 스쿨 오브 디자인에서 회화, 예일대 대학원에서 조소 전공. 2001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을 비롯해 뉴욕 휘트니 미술관, 런던 서펜타인 갤러리, 도쿄 모리미술관 등 세계적 미술관에서 전시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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